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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독일 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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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북독일 연방은 1866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이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설립된 연방 국가이다. 독일 연방 해체 후 소독일주의를 목표로, 프로이센 국왕이 연방 주석을, 프로이센 수상이 연방 재상을 맡아 운영되었다. 연방 의회와 연방 참의원을 두었으나, 실질적인 권한은 프로이센에 집중되었다. 1870년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남부 독일 국가들이 가입하면서 1871년 독일 제국으로 전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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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독일 연방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지도
1870년의 북독일 연방
1870년의 북독일 연방
기본 정보
공식 명칭북독일 연방
일반 언어독일어
저지 독일어
덴마크어
동프리지아어
북프리지아어
폴란드어
카슈브어
슬로빈시아어
실레시아어
체코어
모라비아어
고지 소르브어
저지 소르브어
폴라브어
리투아니아어
쿠르세니에키어
이디시어
비미소리스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
종교다수: 개신교 (루터교, 칼뱅주의, 연합 교회)
소수: 가톨릭, 유대교
독일 제국의 국기
국기
북독일 연방의 국장
국장
정치
정치 체제연방제 의회 반입헌 군주제
수도베를린
수반 직함대통령
수반빌헬름 1세
재임 기간1867년–1871년
부수반 직함총리
부수반오토 폰 비스마르크
부수반 재임 기간1867년–1871년
입법부양원제
상원연방 평의회
하원제국의회
역사
시작연방 조약
시작 날짜1866년 8월 18일
사건 1프라하 조약; 독일 연방 해산
날짜 11866년 8월 20일
사건 2헌법 채택
날짜 21867년 4월 16일
사건 3남부 국가 가입; 독일 제국으로 이름 변경
날짜 31871년 1월 1일
종료 사건제국 선포
종료 날짜1871년 1월 18일
이후 사건제국 헌법
이후 날짜1871년 5월 4일
선행 국가 1독일 연방
선행 국가 이미지 1[[File:Wappen Deutscher Bund.svg|16px|link=German Confederation]]
선행 국가 2슐레스비히 공국
선행 국가 이미지 2[[File:Schleswig Arms.svg|16px|link=Duchy of Schleswig]]
선행 국가 3프로이센 왕국
선행 국가 이미지 3Flag of the Kingdom of Prussia (1803-1892).svg
후행 국가 1독일 제국
후행 국가 이미지 1Flag of the German Empire.svg
통화
통화페어아인스탈러

2. 역사적 배경

1815년부터 1833년까지 오스트리아프로이센독일 연방을 독일 민족의 자유주의적, 민족주의적 열망을 억누르는 수단으로 이용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1866년)의 결과로 독일 연방은 해체되었다. 전쟁 직후,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새로운 북독일 연방이 수립되었다. 이는 이전까지 독일 지역에서 존재했던 명목상의 연방들과는 달리, 실질적인 중앙 권력을 갖춘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연방 국가였다. 북독일 연방의 영역은 서쪽과 남쪽으로는 마인강 북쪽 지역까지, 동쪽으로는 프로이센 왕국동프로이센 지역까지, 북쪽으로는 슐레스비히 지역까지 이르렀다.

1870년 발발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프로이센이 승리하면서, 북독일 연방은 기존에 연방에 참여하지 않았던 남독일 국가들을 흡수하였다. 결국 1871년 1월 18일 독일 제국이 선포되면서 북독일 연방은 발전적으로 해체되었다.

2. 1. 독일 연방의 해체와 북독일 연방의 탄생

1815년 빈 회의 결과 성립된 독일 연방은 점차 그 기능이 약화되었다. 특히 1815년부터 1833년까지 오스트리아 제국프로이센 왕국은 독일 연방을 자유주의민족주의 운동을 억압하는 도구로 활용했다. 한편, 프로이센 주도로 1834년 공식 출범한 관세 동맹(Zollverein)은 오스트리아를 배제한 채 대부분의 독일 국가를 경제적으로 묶으며 소(小) 독일주의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는 역할을 했다.[8][9][10]

1849년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는 프로이센 국왕을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독일의 황제로 추대하려 했으나 국왕의 거부로 실패했다. 이후 프로이센이 1849년부터 1850년까지 에르푸르트 연합을 통해 독일 통일을 시도했지만, 이 역시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 국가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11]

1866년 4월과 6월, 프로이센은 다시 소독일주의 통일안을 제안했다. 이 제안의 핵심은 보편적 남성 선거권에 기반한 독일 의회의 선출이었다.[12] 프로이센의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당시의 민족주의 및 자유주의 운동 내에서 지지를 얻고자 했다. 오스트리아와 동맹국들은 이 제안을 거부했고, 1866년 여름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이 발발했다.

전쟁은 프로이센의 승리로 끝났고, 니콜스부르크 예비 조약(7월 26일)과 최종 프라하 조약 (8월 23일)을 통해 오스트리아는 독일 연방 해체를 요구하는 프로이센의 요구를 수용했다. 프로이센은 대신 마인강 북쪽의 독일 지역에 "더 긴밀한 연방"(ein engerer Bundde)을 설립할 수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이미 평화 회담 전에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와 이 제한에 동의했었다.[13]

1866년 8월 18일, 프로이센과 다수의 북부 및 중부 독일 국가들은 동맹(Bündnisde)을 맺는 북독일 연방 조약을 체결했다. 이 조약은 1년간의 군사 동맹을 창설했으며, 연방 국가를 형성하려는 국가들의 의지를 확인하고 헌법 초안 논의를 위한 의회 소집에 합의했다.[14] 이렇게 탄생한 북독일 연방은 이전의 명목상 연방들과는 달리, 실질적인 중앙 권력을 갖춘 최초의 독일 연방 국가였다. 프로이센은 이 과정에서 전쟁의 적대국이었던 하노버 왕국, 헤센-카셀, 나사우 공국, 자유 도시 프랑크푸르트 등을 직접 병합하고,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역시 프로이센 주로 편입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연방 내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확보했다.[15] 이 병합된 지역들은 하노버 주와 헤센-나사우라는 두 개의 새로운 프로이센 주로 통합되었다.[15]

2. 2. 프로이센 중심의 연방

북독일 연방은 실질적으로 프로이센에 의해 주도되었다. 프로이센은 연방 영토와 인구의 5분의 4를 차지하여 다른 21개 회원국을 합친 것보다 규모가 컸다.[15]

연방의 의장직인 Bundespräsidiumde은 프로이센 왕이 자동으로 맡도록 규정되었다(헌법 제11조). 북독일 연방이 존속하는 동안 이 직위는 빌헬름 1세가 계속 맡았다. 연방 주석(Bundespräsidiumde)으로서 프로이센 왕은 사실상의 국가 원수였으며, 선전포고, 강화, 조약 체결권 및 육해군 최고 통수권을 가졌다. 또한 국가의 유일한 책임 장관인 연방 재상을 임명하고 해임할 권한을 가졌다.

행정권은 연방 재상에게 위임되었다. 이 자리는 프로이센의 총리(Ministerpräsident)이자 외무 장관이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연방 존속 기간 내내 겸임했다. 비스마르크는 연방 재상으로서 Bundesratde(연방 참의원) 의장직도 맡았다. 공식적인 내각은 존재하지 않았고, 재상의 일반 사무실인 Bundeskanzleramtde와 1870년 초부터의 외무성이 사실상 정부 부서의 전부였다.

북독일 연방 헌법 구조도


1867년 2월 24일 제헌 제국 의회() 첫 회의. 이 기구는 헌법 초안을 논의하고 승인하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후 8월에 새 헌법에 따른 첫 제국 의회가 선출되었다.


입법 기관으로는 각 주 정부 대표로 구성된 연방 참의원(Bundesratde)과 25세 이상 남성의 보통·직접 선거로 선출된 국가 의회인 Reichstagde(연방 의회)가 있었다.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연방 의회와 연방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했으며, 이는 주 정부에게 중요한 거부권을 부여하는 방식이었다.[16]

그러나 실질적인 권력은 프로이센과 그 지도부에 집중되어 있었다. 프로이센은 연방 참의원에서 총 43표 중 17표를 보유했으며,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총리로서 이 표결을 지시하고 다른 작은 주들과의 동맹을 통해 쉽게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연방 의회는 입법권과 예산 심의권을 가졌지만, 내각이 존재하지 않았고 연방 주석(프로이센 왕)과 연방 재상(비스마르크)이 동의하지 않으면 사실상 아무것도 결정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처럼 북독일 연방은 프로이센 왕과 재상 비스마르크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2. 3. 소독일주의와 독일 통일

1849년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프로이센 국왕에게 오스트리아를 제외한 소독일주의 방식의 독일 황제 자리를 제안했으나, 국왕은 이를 거부했다. 이후 프로이센은 1849년부터 1850년까지 에르푸르트 연합을 통해 독일 통일을 시도했지만, 오스트리아와 남부 독일 국가인 뷔르템베르크, 바이에른 등의 반대로 무산되었다.[11]

1866년, 프로이센의 총리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다시 소독일주의 통일 방안을 추진했다. 그는 보편적 남성 선거권을 기반으로 한 독일 의회 선출을 제안하며 당시 민족주의 및 자유주의 운동의 지지를 얻고자 했다.[12] 당시 바이에른 왕국을 중심으로 한 독일 남부 제국에는 반(反) 프로이센, 친(親) 오스트리아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우선 오스트리아를 배제하는 소독일주의에 의한 독일 통일을 목표로 삼았다. 이러한 프로이센의 움직임은 결국 오스트리아 및 그 동맹국들과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이어졌다.

1870년 중반,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위기는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발전했다.[18] 전쟁이 진행 중이던 1870년 11월, 남부 독일 국가들인 바이에른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헤센 대공국의 일부가 북독일 연방에 가입했다. 법적으로는 이들 국가가 북독일 연방 헌법 제79조에 따라 연방에 가입한 것이지만,[19] 비스마르크는 남부 국가들의 체면을 고려하여 새로운 국가 창설의 형태를 취하는 정치적 수완을 발휘했다.

이 기회를 통해 북독일 연방은 새로운 헌법을 채택했고, 1870년 12월 10일 연방 의회는 국가 명칭을 Deutsches Reichde(독일 제국)으로 변경하고 연방의 Bundespräsidiumde(연방 의장직)을 보유한 프로이센 국왕에게 독일 황제 칭호를 부여했다. 이 헌법은 1871년 1월 1일에 발효되었다.[20]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인 1871년 1월 18일,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독일 군주들과 고위 군 지휘관들은 빌헬름 1세를 독일 황제로 선포했다.[21] 이 날은 이후 '독일 제국 건국일'(Deutsche Reichsgründungde)로 상징적으로 기념되었지만, 헌법적 의미는 없었다.[22]

북독일 연방에서 독일 제국으로의 전환은 1871년 3월 3일 새로운 국가 의회가 선출되고, 1871년 5월 4일 영구적인 독일 제국 헌법이 발효되면서 완료되었다.[23][24] 프랑스는 1871년 5월 10일 프랑크푸르트 조약을 통해 독일 제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23][24]

3. 정치 제도

북독일 연방의 정치 체제는 1867년 4월 16일에 제정된 북독일 연방 헌법에 기반을 두었다. 형식상으로는 각 회원국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연방제 형태를 취했으나, 실제 운영에서는 프로이센이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구조였다. 연방의 주요 기관으로는 프로이센 국왕이 당연직으로 맡는 연방 의장, 프로이센 총리가 겸임하는 연방 재상, 각 회원국 정부 대표로 구성된 연방 참의원, 그리고 보통 선거로 선출되는 연방 의회가 있었다.[16]

프로이센은 연방 영토와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연방 의장과 연방 재상직을 독점하고 연방 참의원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사실상 연방 전체를 주도했다. 입법권은 연방 의회와 연방 참의원이 공유했지만, 행정권은 연방 재상에게 집중되었고, 연방 재상은 프로이센 국왕에게만 책임을 졌다. 이러한 구조는 민주적 요소(보통선거)와 군주제적, 연방주의적 요소가 혼합된 형태였으며, 실질적으로는 프로이센 중심의 권위주의적 통치 체제에 가까웠다.

3. 1. 연방 기관



북독일 연방의 주요 기관은 다음과 같다.

  • 연방 의장 (Bundespräsidium|분데스프레시디움de): 프로이센 국왕이 자동으로 이 직위를 맡았다 (헌법 제11조). 연방 기간 동안 빌헬름 1세가 이 직위를 유지했다. 사실상 북독일 연방의 국가 원수였으며, 선전포고, 강화 조약 체결, 군 통수권을 가졌다. 비스마르크는 공화주의적 느낌을 피하기 위해 Präsident|프레지덴트de(대통령) 대신 이 칭호를 선택했다.
  • 연방 재상 (Bundeskanzler|분데스칸츨러de): 연방의 유일한 책임 장관으로, 행정 권한을 가졌다. 프로이센 총리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겸임했으며, 연방 의장(프로이센 국왕)에 의해 임명되고 해임되었다. 공식적인 내각은 없었고, 재상 직속으로 일반 사무를 담당하는 Bundeskanzleramt|분데스칸츨러암트de(연방수상청)과 1870년 초부터 외무성만 존재했다. 또한 연방 재상은 Bundesrat|분데스라트de(연방 참의원)의 의장 역할도 수행했다.
  • 연방 참의원 (Bundesrat|분데스라트de): 각 회원국 정부의 대표들로 구성된 연방 평의회였다. 법률안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법률을 제정하기 위해서는 연방 의회와 연방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수 찬성이 필요했다. 이는 각 주 정부에게 중요한 거부권을 부여하는 효과를 가졌다. 프로이센은 총 43표 중 17표를 보유하여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작은 주들과의 동맹을 통해 쉽게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었다. 비스마르크는 프로이센 총리로서 연방 참의원에서 프로이센의 투표를 지시했다.
  • 연방 의회 (Reichstag|라이히스타크de): 1867년 4월 16일의 북독일 연방 헌법에 따라 창설된 국가 의회이다. 25세 이상의 남성을 대상으로 하는 보통 선거를 통해 선출되었다. 법률안 및 예산안 심의권을 가졌으나, 법률 제정을 위해서는 연방 참의원의 동의가 필요했다. 사실상 연방 주석(프로이센 국왕)과 연방 재상이 동의하지 않으면 실질적인 결정 권한이 제한되는 구조였다.[16]


북독일 연방은 프로이센에 의해 강력하게 지배되었다. 프로이센은 연방 영토와 인구의 5분의 4를 차지했으며, 프로이센 국왕이 연방 의장을, 프로이센 총리가 연방 재상을 겸임했다. 연방 참의원에서도 프로이센은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3. 2. 프로이센의 주도적 역할

북독일 연방은 사실상 프로이센에 의해 지배되었다. 프로이센은 연방 영토와 인구의 5분의 4, 즉 8할 이상을 차지하여 다른 21개 회원국을 모두 합친 것보다 훨씬 컸다.

연방의 헌법상 최고 기관인 Bundespräsidium|분데스프레지디움de(연방 의장직)은 프로이센 왕이 자동으로 맡도록 규정되었다(제11조). 이에 따라 빌헬름 1세가 연방 의장으로서 사실상의 국가 원수 역할을 수행했다. 프로이센 왕은 연방 의장으로서 선전포고, 강화, 조약 체결 및 연방 육해군 통수권을 가졌다.

행정 권한은 유일한 연방 장관인 연방 재상(Bundeskanzler)에게 위임되었으며, 프로이센의 총리이자 외무 장관이었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가 이 직책을 맡았다. 연방 재상은 연방 의장, 즉 프로이센 왕에 의해 임명되고 해임되었으며, 연방 참의원(Bundesrat) 의장도 겸임했다. 공식적인 내각은 없었고, 연방 재상의 일반 사무실인 Bundeskanzleramt|분데스칸츨러암트de(연방 재상청)와 1870년 초부터 외무성이 정부 부서의 전부였다.

입법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연방 참의원(Bundesrat)은 각 주 정부 대표들로 구성되었는데, 총 43표 중 프로이센이 17표를 보유했다. 이는 과반수는 아니었지만, 프로이센 총리이기도 한 연방 재상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의 투표를 지시하고 작은 주들과 동맹을 맺어 쉽게 과반수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였다.[16] 법률 제정을 위해서는 보통 선거로 선출된 연방 의회(Reichstag)와 연방 참의원 모두에서 과반수 찬성이 필요했지만, 연방 참의원을 통한 프로이센의 영향력은 매우 컸다.

이러한 구조는 연방 의장인 프로이센 왕과 연방 재상인 프로이센 총리가 연방의 주요 권한을 장악했음을 의미했다. 사실상 이들의 동의 없이는 연방 의회(Reichstag)나 연방 참의원(Bundesrat)에서 어떤 것도 결정하기 어려웠다.

4. 주요 정책 및 활동

북독일 연방의 약 3년 반 동안 주요 활동은 북독일 통일을 위한 법률 제정에 집중되었다. 국회(Reichstag)는 연방 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지기 위해 다음과 같은 주요 법률들을 제정했다.


  • 연방 영토 내 시민의 자유로운 이동 보장 (1867년)
  • 공동 우편 시스템 구축 (1867년–1868년)
  • 공동 여권 발급 (1867년)
  • 다양한 종교 교파의 평등한 권리 보장 (1869년)
  • 도량형 통일 (미터법 의무 도입 포함)
  • 형법 제정 (1870년)


북독일 연방은 또한 1834년에 결성된 독일 관세 동맹의 회원국이 되었다.[8][10] 1867년 6월, 북독일 연방에 가입하지 않은 프로이센 왕국과 남독일 국가들 간의 회담이 열렸고, 프로이센의 압력으로 다음 달 새로운 관세 동맹 조약이 체결되었다. 이 조약에 따라 관세 동맹의 집행 기관은 북독일 연방의 연방 평의회(Bundesrat)와 제국 의회(Reichstag)가 맡게 되었으며, 남독일 정부 대표들과 의원들이 각각 참여했다. 관세 문제를 다루기 위해 이렇게 확대된 기관은 연방 관세 위원회와 관세 의회(Zollparlament)로 불렸다.[17]

1868년 1월 1일 새로운 관세 동맹 체제가 발효되었다. 비스마르크는 이 관세 동맹이 독일 통일의 매개체가 되기를 기대했으나, 1868년 관세 의회 선거에서 남독일인들은 주로 반(反)프로이센 정당에 투표하며 통일에 대한 견해 차이를 드러냈다.

한편, 두 메클렌부르크 공국과 세 한자 동맹 도시는 처음에는 관세 동맹에 참여하지 않았다. 메클렌부르크와 뤼베크는 북독일 연방 결성 직후 가입했으며, 함부르크와 브레멘은 프로이센의 지속적인 압력 끝에 1888년에야 관세 동맹에 합류했다. 이 도시들은 관세 동맹 밖에 있으면서도 연방 기관에는 완전하게 참여했다.

1868년 북독일 7-크로이처 우표. 북독일 국가의 우편 서비스는 독일 제국 우편의 전신인 북독일 우편 구역으로 통합되었다.


연방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우편 업무를 통합하고 공동 우표를 발행하는 것이었다. 북독일 연방 내 여러 국가들의 우편 서비스는 북독일 우편 구역(Norddeutscher Postbezirk|노르트도이처 포스트베치르크de)으로 통합되었으며, 이는 훗날 독일 제국 우편의 기반이 되었다.

5. 회원국

1866년 프로이센 왕국이 주도하고 오스트리아 제국을 배제하는 소(小) 독일주의 구상에 따라 북독일 연방이 형성되었다. 이는 1834년부터 프로이센 주도로 운영되어 온 관세 동맹(Zollverein)을 기반으로 하였으며,[8][9][10] 1866년 8월 18일 프로이센과 북부 및 중부 독일 국가들이 체결한 북독일 연방 조약(Bündnis|뷘트니스de)을 통해 공식화되었다.[14] 이 조약은 군사 동맹의 성격을 가졌으며, 연방 헌법 제정을 위한 의회 소집을 약속했다.

프로이센은 1866년 전쟁 이후 적대국이었던 하노버, 헤센-카셀, 나사우, 자유 도시 프랑크푸르트 등을 직접 병합하여 새로운 주(하노버 주, 헤센-나사우 주)로 편입시켰고,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 역시 프로이센의 주로 만들었다.[15] 전쟁의 다른 적대국이었던 작센 왕국헤센 대공국은 평화 조약을 통해 연방 가입에 동의해야 했으며, 헤센 대공국은 마인강 이북의 영토(오버헤센)만 연방에 포함되었다.[14]

북독일 연방의 회원국은 다음과 같다.

국가 형태국가명
왕국프로이센 왕국 (프로이센 본토 외 하노버, 헤센-카셀, 나사우, 프랑크푸르트,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포함)
왕국작센 왕국
대공국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대공국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대공국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
대공국올덴부르크 대공국
대공국헤센 대공국 (마인강 이북 영토 한정)
공국브라운슈바이크 공국
공국작센-마이닝겐 공국
공국작센-알텐부르크 공국
공국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공국안할트 공국
후국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후국슈바르츠부르크-존더스하우젠 후국
후국샤움부르크-리페 후국
후국리페 후국
후국발데크 후국
후국로이스-그라이츠 후국
후국로이스-게라 후국
자유 한자 도시뤼베크
자유 한자 도시브레멘
자유 한자 도시함부르크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두 대공국과 뤼베크는 연방 결성 직후 관세 동맹에도 가입했다. 반면, 함부르크와 브레멘은 연방의 회원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프로이센의 지속적인 압력 끝에 1888년에야 관세 동맹에 최종적으로 합류했다. 이들 한자 도시는 관세 동맹 가입 전에도 연방 기관에는 완전하게 참여했다.

1867년에는 남독일 국가들(바이에른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 헤센 대공국 남부)과 새로운 관세 동맹 조약이 체결되어, 관세 문제에 한해 북독일 연방의 연방 평의회(Bundesrat)와 제국 의회(Reichstag)가 남독일 대표들을 포함하여 확대 운영되었다. 이 기구는 연방 관세 위원회와 관세 의회(Zollparlament|촐파를라멘트de)로 불렸다.[17] 비스마르크는 이를 통해 남독일 국가들과의 통일을 촉진하고자 했으나, 1868년 관세 의회 선거에서는 반(反)프로이센 성향의 남독일 대표들이 다수 선출되기도 했다.

6. 독일 제국으로의 전환

1870년 중반, 스페인 왕위 계승 문제를 둘러싼 외교적 갈등은 결국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으로 이어졌다.[18] 전쟁이 한창이던 1870년 11월, 남부 독일의 바이에른 왕국, 뷔르템베르크 왕국, 바덴 대공국과 연방에서 제외되었던 헤센 대공국의 일부 지역이 북독일 연방에 가입했다. 이를 계기로 북독일 연방은 새로운 헌법을 마련하고 국가의 명칭을 Deutsches Reich|도이체스 라이히de(독일 제국)으로 변경했다.

일부 독일 전문가들은 북독일 연방과 남부 국가들이 새로운 연방 국가, 즉 독일 제국을 창설했다고 보기도 한다. 실제로 비스마르크는 남부 독일 국가들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새로운 국가 창설을 암시하는 용어를 사용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남부 국가들이 북독일 연방에 가입한 것이며, 이는 북독일 연방 헌법 제79조에 근거한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19]

1870년 12월 10일, 북독일 연방의 국가 의회(Reichstag)는 새 헌법을 채택했다. 이 헌법은 국가 명칭을 Deutsches Reich|도이체스 라이히de로 바꾸고, 연방의 Bundespräsidium|분데스프레지디움de(연방 의장)직을 맡고 있던 프로이센 국왕에게 독일 황제(Deutscher Kaiser|도이처 카이저de) 칭호를 부여했다. 이 헌법은 1871년 1월 1일에 발효되었으나, 4개월 후인 1871년 5월 4일에 새로운 독일 제국 헌법이 발효되면서 대체되었다.[20]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1871년 1월 18일, 독일 군주들과 고위 군 지휘관들은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에서 프로이센 국왕 빌헬름 1세를 독일 황제로 선포했다.[21] 이 날은 이후 '독일 제국 건국일'(Deutsche Reichsgründung|도이체 라이히스그륀둥de)로 기념되었지만, 헌법적으로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은 아니었다.[22]

1871년 3월 3일에 새로운 국가 의회가 선출되었고, 1871년 5월 4일에는 독일 제국 헌법이 발효되어 독일 제국이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이 헌법은 제1차 세계 대전 패배로 군주제가 끝날 때까지 유지되었다. 프랑스는 1871년 5월 10일 프랑크푸르트 조약을 통해 독일 제국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23][24]

북독일 연방 헌법(1867년)과 두 차례의 독일 제국 헌법(1871년 1월, 1871년 4월)은 내용상 큰 차이가 없었다. 독일 제국은 이후 약 10년에 걸쳐 여러 정부 부서(부처에 해당), 책임 있는 국무 장관(장관에 해당, 1878년 도입), 제국 법원( Reichsgericht|라이히스게리히트de, 1879년 설립) 등을 갖춘 완전한 연방 국가로 발전해 나갔다.

참조

[1] 문서 An alternative translation is "North German Federation."
[2]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Vom Alten Reich bis Weimar (1495–1934). Springer
[3]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Vom Alten Reich bis Weimar (1495–1934). Springer
[4]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Vom Alten Reich bis Weimar (1495–1934). Springer
[5] 웹사이트 Die Reichsgründung 1871 (The Foundation of the Empire, 1871) http://www.dhm.de/le[...] 2008-12-22
[6] 서적 Bismarck The Viking Press
[7]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seit 1789. Vol. III: Bismarck und das Reich. W. Kohlhammer
[8] 논문 A novel institution: the ''Zollverein'' and the origins of the customs union https://www.cambridg[...]
[9] 웹사이트 Germany – The age of Metternich and the era of unification, 1815–71 https://www.britanni[...] Britannica
[10] 논문 A novel institution: the ''Zollverein'' and the origins of the customs union https://www.cambridg[...]
[11] 서적 Die Erfurter Union und das Erfurter Unionsparlament 1850
[12]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seit 1789. Vol. III: Bismarck und das Reich. Kohlhammer Verlag
[13]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seit 1789. Vol. III: Bismarck und das Reich. W. Kohlhammer
[14]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Vom Alten Reich bis Weimar (1495–1934). Springer
[15]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seit 1789. Vol. III: Bismarck und das Reich. W. Kohlhammer
[16] 논문 Hegemonie und Gleichgewicht im Bundesstaat. Preußen 1867–1933: Geschichte eines hegemonialen Gliedstaates. Shaker Verlag
[17] 서적 The Zollverei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8] 서적 Deutschland im 19. Jahrhundert: Entwicklungslinien https://books.google[...]
[19]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Vom Alten Reich bis Weimar (1495–1934). Springer
[20] 서적 European Constitutional History https://archive.org/[...] Jennings & Pye
[21] 웹사이트 Die Reichsgründung 1871 (The Foundation of the Empire, 1871) http://www.dhm.de/le[...] 2008-12-22
[22]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seit 1789. Vol. III: Bismarck und das Reich. W. Kohlhammer
[23] 서적 Bismarck The Viking Press
[24] 서적 Deutsche Verfassungsgeschichte seit 1789. Vol. III: Bismarck und das Reich. W. Kohlhammer
[25] 서적 一九世紀ドイツ憲法理論の研究 信山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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